학원 강사의 시작
대학 졸업 후 취직이 어려워
‘알바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당시는 ‘교차로’라는 신문으로 구인구직이 이루어지던 시절이었는데,
마침 집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는 학원에서 강사를 구한다고 하여
이력서를 한 장 써 들고 방문을 했지요.
그 당시 저는 과외도 한 번 해보지 않았는데, 무슨 배짱으로 학원 강사를 하려고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합니다.
1차 면접을 보고 나서
“당장은 수학 강사가 필요하니
내일 중2 수학 시강을 준비해 오세요.”
라고 하셨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책을 사고,
밤새 공부하고 연습했습니다.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준비한 시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덜덜 떨면서 시강을 했는데,
“내일부터 나오세요!”
저는 타고난 강사일까요?
(이후로도 저는 단 한 번도
강사 채용 면접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습니다.)
과학 강사로 다시 시작
알바로 시작한 수학 학원 강사 일이
천직으로 느껴질 정도로 좋았습니다.
원장님을 비롯해 학생들에게도
인기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시험을 잘 보면
세상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과학으로
과목을 변경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전문성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다니던 학원 원장님께
과학으로 과목을 변경하기 위해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리니,
“1년만 다른 곳에서 트레이닝하고
다시 돌아와라!” 하셔서
진짜 1년 후 다시 돌아가
과학 강사로 자리 잡았던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원장님이 예뻐하던 강사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을지는 상상에 맡깁니다.)
검정고시 학원 강사의 시작
학원 강사의 일은
밤 10시에 끝이 납니다.
진심을 다해 육성으로 수업하다 보니
성대결절 수술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는 건
가장 신나는 일이었지만
몸이 아프니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되었지요.
그곳이 신설동에 있던
(지금은 없어졌지만)
‘고려학원’이었습니다.
검정고시 학원으로는
당시 가장 큰 학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바로 옆 ‘수도학원’과 경쟁 중이었지요.)
강사료는 이전보다 적었지만
아침에 시작하는 학교 같은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학생은 10대부터 60대까지 있었고,
배움의 목적이 분명했기에
수업할 맛이 났습니다.
(배움의 목적 = 검정고시 합격증)
시험에 합격하면 졸업을 하시는데,
60대 어르신들께서 연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아마 “고맙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시기였을 겁니다.
노처녀 결혼
고려학원을 다니던 중 결혼을 합니다.
결혼식 주례사 중
“노총각, 노처녀 결혼이다. 축하한다.”
그 말만 또렷이 기억납니다.
당시 나이 신랑 37세, 신부 33세
지금은 40대 결혼이 다반사인데 억울하긴합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원을 그만두고 출산을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자
그 아이는 제 인생의 유일한 수강생이 되었습니다.
말도 잘했고
글도 잘 읽었습니다.
그 후
또 한 명의 수강생이 더 태어났습니다.
대치동 키즈
대치동에서 딸 둘을 키웠습니다.
공부도 잘했고
학급 임원은 초등부터 고등까지 놓치지 않았습니다.
(온루틴에는 임원 선거 준비 특강도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아래링크를 확인해 주세요.)
지금은 대한민국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두 인재를 보내드렸습니다.
제가 딸 둘을 키우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자기주도였습니다.
대치동에서는
아이의 모든 것을 부모가 대신해 주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이가 스스로 계획하게 했고,
계획을 성공했을 때
충분히 함께 기뻐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성공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과외 지도의 시작
첫째가 대학에 진학하고
둘째도 제 손길이 필요 없어졌을 때,
초등학생을 위한 과외 지도를 시작했습니다.
포지셔닝은 전과목 선생님이었습니다.
7세에 만나
중학생이 되어 졸업시켰을 정도로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함께했습니다.
7세에 만나는 친구들은
특히 독서에 주력했는데,
꾸준히 독서를 함께한 한 친구는
삼국지를 여러 번 읽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전과목 선생님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원하는 과목의 학원 세팅을 포함해
필요한 과목의 수업을 함께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수학을 메인으로 진행했고
과학, 사회, 국어까지 함께 했습니다.
생각하는 황소
대치동에서는
황소수학학원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의 기준입니다.
제가 가르치던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황소수학학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시험을 준비해 보내면
정규반 또는 편입반에
바로 합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이후에는
주 1회씩 만나 단원평가를 대비해 주다가
졸업을 시키거나,
중학생 과학으로 수업을 이어갔습니다.
온루틴의 탄생 배경
전과목 관리를 하던 아이들의 성장을 보며
제가 진행하던 방식이 옳았다는 확신을 다시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는 방식은
‘루틴을 만드는 것’입니다.
(온루틴에서 진행하는 루틴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
다음에 전달할 [진행방식]으로 전하겠습니다.)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국어 독해 문제집 한 회분,
수학 연산 문제집 두 쪽으로
공부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는 뇌에게
“나 이제 공부 시작한다. 부탁해!”
라고 말 거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동시에 다음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트리거가 됩니다.
학교 단원평가가 있을 때는
교과서를 가지고
혼자 공부할 수 있도록 지도했습니다.
(온루틴에서 단원평가를 준비하는 방식은 블로그의 다른 글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하는 방식은
중·고등학교에 가서도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성장한 아이들을 보며
다른 아이들에게도 적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5년에 워킹맘의 아이들을 맡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워킹맘의 고충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워킹맘에게 꼭 필요한 공간을 만들자."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이 온루틴입니다.
지금은
워킹맘에게만 필요한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잘 키우겠습니다.
엄마로서 딸들을 잘 키워냈고,
선생님으로서 만난 아이들도 잘 키워냈습니다.
이제는 온루틴 차례입니다.
온루틴에서 저는
엄마의 역할과
선생님의 역할을
반반 수행합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습니다.
늘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고민하며
아이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